성공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미안하지만 ‘나는 호른바흐 당했다1 min read

나는 호른바흐 당했다. #Ich_wurde_geHORNBACHt

독일은 결코 ‘천국’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독일에 대한 환상을 품고 독일땅으로 온다. 나 또한 그랬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시절은 끝이 났다. 독일에 온 지 6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열등한’ 소수자로 위축되어 살아간다는 건 꽤나 고된 일이다.

길거리에서 칭창총, 곤니치와 소리를 듣는 건 이제 익숙한 인사다.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과도한 웃음으로 쩔쩔매고, 백인 여성에게 터무니없는 타박을 듣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밤에 이불을 찬다.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저 말을 했어야 했는데!

이게 바로 인종주의의 냄새!

구걸하던 백인 거지는 내가 돈 주는 것을 거절하자 ‘중국 x년’이라는 말을 던지고 간다. 왜 또 이런 욕은 귀에 쏙쏙 박히게 들리는지? 백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결코 듣지 않았던, 듣지 않았을 욕이다. 명예 백인이 되지 않고는 이 땅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백인을 하나 옆에 끼지 않고는 당당해지기가 쉽지 않다. 돈이 아주 많아서 변호사를 통역사를 늘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을 떠난다. ‘백인혐오’와 ‘독일혐오’를 안고서 독일을 떠난다. 떠났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 성공한 이야기만 공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성공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미안하지만
‘나는 호른바흐 당했다.’

늦은 밤 독일 호른바흐의 광고를 보고 나는 정말 성희롱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수치스럽고 분노했고, 상처가 났다. 아시아 여성의 우스꽝스러운 오르가즘 표정을 보면서 함께 ‘광고 죽이네~’하고 깔깔거리는 수많은 독일인들이 모두 혐오스러웠다. 일본이 배경인 것이 명백한 광고에서 왜 한국 여자들이 난리냐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에서 나는 한국 여성이 아니다. 아시아인 여성이다. 칭창총, 니하오, 곤니치와, 요즘은 아주 가끔 안녕하세요도 듣는, 백인-유럽사회에 있는 아시아인 여성이다. 나는 이곳에서 그렇게 분류된다. 그래서 그 광고가 내게는 분노스럽다. 그 광고의 이미지는 독일에서 곧 ‘나의 이미지’다.

호른바흐 그 자체인 백인-유럽-남성 .

이 광고를 마주하고 자포자기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돌아갈 수 있는 이들은 ‘아시아 여성’이 아닌 ‘나’로 살 수 있는 내 나라로 돌아가고, 혹은 만사를 잊고 각개전투하며 일상을 또 살아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분노했다. 그동안 무단횡단도 하지 않고 조심하면서 살아왔던 일상들, 칭찬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그저 사회에 해가 되지 않으려고 살아왔던 일상들, 독일은 나의 일상을 저런식으로 돌려주고 있었다.

독일에서 해방된 점도 물론 있다. 한국에서 들고 온 하이힐을 단 한 번도 신지 않았다. 화장을 하지 않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일상을 보낼 때가 많다. 노메이크업과 노브라의 자유로움이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유로움이다.

이렇게 해방스러운 공간인 이곳에서도 나는 가끔, 아니 종종 ‘호른바흐 당한다’. 그래서 ‘나는 호른바흐 당했다’는 이 시끄러운 소리가 더 시끄러워지도록 한 소리 더 보탠다.

우리 모두는, 모두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나는 지금 이곳 독일에서 실존한다. 어려운 이론이나 역사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일상을 위해서, 내 실존을 위해서 말할 뿐이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어색하고 친절한 미소나 날리는 말 없는 아시아 여성으로만 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끄럽게 말할 것이다.

나는 호른바흐 당했다. #Ich_wurde_geHORNBA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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