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독일의 폭죽 '안전불감증'1 min read

그 날이 다가온다. 12월 31일.

크리스마스 마켓이 광장을 떠나면 약 일주일간 도시엔 폭풍 전야와 같은 적막이 내려앉는다. 일년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행사, 질베스터(Silvester)의 상륙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독일의 12월 31일은 폭죽으로 유명하다. 하늘을 부수려는 듯 밤새 쏘아대는 폭죽의 굉음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전쟁의 땅’ 독일에서는 그 느낌이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new-years-eve-1953253_1280
12월 31일 질베스터. 빛과 굉음으로 악귀를 물리치는데서 유래했다는 독일의 폭죽놀이

사실 연말의 폭죽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풍경이다. 불꽃놀이는 나라를 불문하고 해가 바뀌는 순간 지난 해를 떠나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의 ‘의례’와 같다. 신기하게도 문화가 달라도 새해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들 비슷한가 보다. 그러나 이 즐거운 순간에도 방심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규모 불꽃놀이는 일반적으로 개인보다는 정부가 주관한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아웃풋’이 매우 미미한 비효율적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약간 ‘공공재’의 성격도 묻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개인은 참여하기 보다는 관람하는 쪽이 편하다. 굳이 한다면 문구점에서 ‘삐리뽕’하는 몇가지를 사서 터뜨리는 게 보통이다. 한국에선 보통이었다. 하지만 독일에선 얘기가 다르다. 개인이 즐길 수 있는 폭죽의 양과 파괴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야말로 ‘폭탄’이다.

독일에선 연말 시즌이 되면 백화점, 마트, 문구점 등 다양한 상점에서 폭죽을 구입할 수 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몇 유로에서 몇 백 유로에 달하는 것까지 상품의 폭도 다양하고 비싼 것은 세계불꽃축제에 참석하진 못하겠지만 그 언저리에는 갈 수 있을 만큼 화려하다.

이 시기만 되면 독일 슈퍼는 폭죽 장사에 여념이 없다

 

독일 통계회사 슈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이 시즌에 팔린 폭죽의 액수가 2017년에만 약 1억3700만 유로, 우리 돈 1780억원에 달한다. 이 폭죽들은 12월 31일 오후 땅거미가 내려 앉기 무섭게 사방에서 터지기 시작한다. 독일전역에서 1월 1일 해가 뜰 때까지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지축을 흔든다. 폭죽을 직접 터뜨리던지, 옆에서 불꽃을 보던지, 멀리서 폭발음을 듣던지 거의 모든 사람의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오히려 이 광란의 밤에 사고가 안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실제로 매년 이 하루 동안 독일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 독일 베를린 지역신문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에 따르면 지난 12월 31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베를린에서만 총 3084건의 응급전화가 걸려왔다. 베를린 지역 병원 한 군데서만 21명의 폭죽 부상자가 실려왔고 그 중 5명은 부상 부위를 절단해야하는 수술을 받아야했다. 소방차는 1580번 출동했고, 400건에 이르는 화재를 진압했다. 이날 폭죽놀이로 베를린에서만 두 명이 죽었다. 흥분에 취해 불꽃을 트램, 지하철 등은 물론 심지어 행인을 향해서 쏘는 사람들을 나 또한 여러 번 보았다.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공포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날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한다.

연방정부의 폭약법(Sprengstoffgesetz)은 용도와 위험정도에 따라 폭발물의 종류를 F, T, S, P로 나누어 놓았는데 질베스터에 주로 사용되는 것은 F1과 F2 항목이다. F1은 화약총이나 불꽃이 나는 도화선 등을 말하며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 F2는 로켓형 폭죽으로 18세 이상이 되어야 구입할 수 있는데 개인에게는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단 3일동안만 판매가 허용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 듯 많은 청소년들이 로켓형 폭죽을 쏘는 걸 볼 수 있다.

독일은 세계적으로 안전제일주의로 명성이 높다. 시도때도 없는 안전점검 탓에 수시로 연착되는 기차와 비행기, 도심에서 일년 내내 이루어지는 정비공사는 과하다 싶지만 이내 ‘독일’이니까 그럴수도 있겠구나하고 수긍하게 된다. 안전한 자동차의 대명사인 ‘독일차’, 연방정부의 원자력에너지 포기 등 안전을 위해 적극적인 기업과 정부가 존재하는 독일. 그런데 폭죽이라는 ‘폭발물’에 이토록 관대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전통으로 봐야할까? 단순한 불장난으로 봐야할까?

silvester
베를린 지역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 응답자의 65%가 질베스터 폭죽을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결국 수많은 사건사고와 테러위협 때문에 많은 도시들이 몇 년 전부터 질베스터에 제한적으로 폭죽을 금지하고 나섰다. 이 도시들의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2018년 현재 하노버, 쾰른, 도르트문트, 괴팅엔 등 20개 도시가 리스트에 올라있다. 역사지구 보호와 인명사고 방지라는 이유에서다. 앞으로 이 도시들의 수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위험한’ 불꽃놀이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새 해의 첫날, 축포의 역할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눈과 귀와 가슴을 뻥 뚫어 주는 한밤의 불꽃놀이는 새로운 희망을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반복적으로 넘겨지는 일상의 책장에도 화려한 책갈피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책을 읽는데 있어서 매너리즘을 떨치고 새로운 마음을 다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희망이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면 절망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긍정적인 감정도 과격하게 표현된다면 자칫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어차피 내년에도 질베스터는 또 온다. 평생 동안 질베스터를 즐기고 싶다면 ‘장기적 관점’에 따라 잠시만이라도 안전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참고자료:
-https://de.statista.com/statistik/daten/studie/284913/umfrage/umsatz-der-deutschen-pyrotechnischen-industrie/
-https://www.tagesspiegel.de/berlin/jahreswechsel-in-berlin-macht-endlich-schluss-mit-dem-silvester-geballer/23759070.html

 

Print Friendly, PDF & Email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