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뤼바인과 김치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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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유럽은 오렌지빛 조명으로 물든다. 어스름이 지고 이른 밤이 찾아오면 유럽인들은 추위도 잊은 채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몰려든다. 은은한 조명과 거대한 트리 그리고 거리에 울려 퍼지는 악사들의 캐롤. 이 절묘한 삼박자는 오늘날 연말분위기를 완성하는 필수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 풍경은 유럽의 겨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족끼리 또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작은 잔을 하나씩 들고 담소를 나눈다. 양 손안에 쏙 안기는 귀여운 크기의 컵이다. ‘글뤼바인’의 달큰한 향기가 퍼진다.

크리스마스 마켓, 독일어로 바이나흑츠막트(Weihnachtsmarkt)는 사실 14세기 중세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129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12월 마켓이 그 시초로 여겨진다. 이후 독일어권 전역에서 열리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독일어권 내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전 약 한달 간 흥겨운 판을 벌린다. 글뤼바인(Glühwein)의 역사는 비록 170여 년밖에(?) 안됐지만 그 판의 주인공과 같다. 와인 안에 여러가지 과일과 향신료를 넣고 따뜻하게 데운 글뤼바인의 향과 따스함이 없다면 사람들은 이 추운 겨울날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 와보지 않은 사람들 중 이 ‘원조’ 글뤼바인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참을 그 맛과 예찬을 펼쳐 놓고 나면 “아~ 뱅쇼!”라고 맞장구를 친다. 어리둥절한 내가 ‘응? 그게 뭐지?’ 라는 얼굴을 하고 있자 한국에 최근 생기기 시작한 크리스마스마켓을 설명한다. 무슨 일인고 하니 프랑스 도시인 스트라스부르가 서울에 크리스마스마켓(프랑스어로는 마르셰 드 노엘 marché de Noël)을 개최하면서 크리스마스마켓을 ‘마르셰 드 노엘’이라는 이름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이었다!

글뤼바인 또한 프랑스어인 뱅쇼(vin chaud)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있었다. 곧바로 내 안의 ‘독뽕’이 끓어 올라 원조의 품격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뭐래, 낭만적인 건 프랑스지. 이름도 뱅쇼가 더 어울리는구만’이라는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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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먹는 따뜻한 와인, 독일 ‘글뤼바인’이 원조이지만 한국에서는 ‘뱅쇼’로 더 알려져있다.

그렇다. 이들에게 낭만=프랑스, 크리스마스마켓=낭만, 고로 크리스마스마켓=프랑스라는 정반합 원칙이 성립되는 것이었다. 글뤼바인이 독일에서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이제 그 고향을 빼앗기게 될 판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독일에 글뤼바인이 있다면 우리에겐 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김치의 ‘기무치’화를 우려해왔다. 김치의 일본식 발음인 기무치가 인지도 높은 일본 음식들 사이에서 끼어 세계로 팔려나갔고 서양인들은 그것을 일본음식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이곳 독일에서도 일본음식점에 가면 종종 기무치라고 적힌 메뉴판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일본어 표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는 외래어 표기에 사용되는 카타카나로 쓰여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일본인들도 그것이 외국의 것이라는 걸 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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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일본 스시집 메뉴로 독일에 퍼진 탓에 아직도 ‘기무치’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오해는 그것을 애초에 모른 채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해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 만물을 모두 알고 경험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해당 나라에 대한 ‘인지도’고 그 인지도는 그 나라의 ‘문화력’에서 좌우된다.

프랑스와 일본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모두들 쉽게 연상되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예술과 낭만의 나라 프랑스’ 그리고 ‘문화컨텐츠의 천국’ 일본. 이러한 이미지는 뇌리에 박혀 그 나라와 연관된 모든 것을 근거없이 규정한다. 그리고 호감을 만든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도 프랑스인이 하면 ‘예술적’이 되고 일본인이 하면 ‘개성’이 된다.

이미지의 힘, 즉 문화력은 그런 것이다. 문화마케팅의 기본은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넘치는 ‘국뽕력’으로 김치를 외국인들에게 아무리 먹어라 애원해도 국가이미지에서 비롯된 호감이 없으면 절대 거들떠 보지 않는다. 아마 김치가 세상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라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감이 없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나부터도 잘 모르는 나라의 음식은 시도해보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문화마케팅이라는 단어는 모순적이다. 문화 자체는 저절로 퍼지는 것이지 상품처럼 마케팅을 하고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의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문화력’이라는 말은 무시할 수 없다. 강력한 문화력을 가진 소위 문화강대국들이 주변 지역의 문화까지 자신의 것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걸 보면 사뭇 긴장이 된다.

한국의 대중문화도 이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덕분에 한국의 음식들도 인지도를 많이 높였으나 여전히 걱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영화나 게임에서 사무라이들이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면 비빔밥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참으로 슬퍼지는 상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떨쳐버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에겐 방탄소년단(BTS)이 있다. 그들이 한국의 문화력을 얼마나 키워줄지 기대해 보자.

* <무허가 문화약국> 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문화라는 약을 처방전 없이 조제합니다.

 

1 thought on “글뤼바인과 김치

  1. 잘읽고 갑니다 ^^
    좋은 지적이신것 같애요.
    저도 일본에 살때 기무치를 보고 안타까웠는데, 뱅쇼도 한국에서 첨 접할때 프랑스가 원조인줄 알았드랬죠.
    독일와서 글뤼바인 마시며 아, 이거 뱅쇼랑 똑같네. 했습니다.
    ㅋㅋㅋ
    앞으로도 좋은글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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