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아티스트 홈즈: 모두를 위한 실험과 시도의 공간1 min read

조용하고 평화로운 서베를린의 한 거리, 깨끗한 건물들 사이로 은밀하게 자리 잡은 벙커가 있다. 나치 때 지어진 이 방공호는 지금도 '벙커'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공간을 채우는 공기는 완전히 다르다. 시멘트가 드러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넓고 아늑한 카페가 나온다. 깔끔하고 트렌디한 카페인가 싶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미로의 시작점 같은 통로로 들어가면 갤러리와 공연장이 나타난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본다. 끝없는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여러 방들이 있다. 여기는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규정해보고 싶지만 쉽지 않다. 모든 것이 가능한 이곳은 베를린 빌머스도르프 지역에 있는 예술벙커 아티스트 홈즈(Artist Homes)다.

 

아티스트 홈즈를 운영하는 건 김종하 대표 부부와 그의 누나인 김흔하 작가다. 김종하 대표는 한국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와서 재즈를 공부했다. 20년 넘게 기타를 연주해온 음악인이지만, 지금은 아티스트 홈즈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예술가다. 조형예술을 전공한 김흔하 작가는 아티스트 홈즈의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다. 인터뷰는 김종하 대표와 진행했다.


아티스트 홈즈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음악 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저의 음악 작업실을 찾으려고 했어요. 아내가 우연히 이곳 임대 광고를 보고는 사진도 멋있고 집 근처라서 산책 겸 보러 갔어요. 작업실로 쓰기엔 말도 안 되게 넓었고, 우리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둘 다 이 공간에 한눈에 반했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고, 여기는 공연장, 갤러리, 방은 어떻게 쓰고... 머릿속에 이미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그날 바로 이 공간을 쓰자고 결정했어요. 그게 2015년 여름이었습니다. 바로 준비해서 그해 겨울에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연 지 3년이 훌쩍 넘었네요한국 사람이 하는 곳인데도 그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저희가 큰 단체도 아니고, 어디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다른 곳처럼 공격적으로 광고를 한다던가, 유명 작가나 음악가를 데리고 온다던가 하는 일을 할 여력이 사실 없었어요. 지금도 빚을 내서 하고 있는데, 더 낼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래서 초기에는 사실 스트레스도 컸습니다. 아이디어는 많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조금 내려놓고 있지만요.

 

아티스트 홈즈 운영팀. 왼쪽부터 케이코 쿠사바와 김종하 대표 부부, 그리고 김흔하 작가

아티스트 홈즈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거죠?

이 공간에서 하고자 하는 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융합(Interdisciplinary) 프로젝트에요. 전형적인 음악, 미술 이런 게 아니라 과학, 학문, 인문학 등등 다양한 분야와 예술을 함께 하는, 말도 안 되는 어떤 시도를 해 보고 싶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게 없지는 않아요. 클래식과 재즈처럼 한 분야 안에서 섞거나 이벤트성으로 이뤄지고 있죠. 저는 장기적으로 이런 융합적인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그 노하우를 모으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이미 다양한 분야가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데요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오늘은 공연장에서 가야금과 강독 행사가 있고, 공연장 옆 전시장에는 독일 예술가 29인의 아바쿠스(Memo Abakus)전이 열리고 있어요. 최근에 카페 공간을 재구성해서 조금 넓혔고요. 시민단체 사무실도 한 곳 입주해있어요.

공간 대여도 하는데요, 회사 이벤트나 개인 공연, 여러 방을 다양한 용도로 임대할 수 있어요. 처음에 말한 융복합 프로젝트는 사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목표로 하는 것들을 시작하기 위해서 카페나 임대 등으로 단기 비지니스 모델을 추진하고 있어요.

예술 공간인데 지원을 받지는 않나요?

그동안 많은 분들이 협회로 바꾸어서 지원금을 받으라고 조언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지원 없이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현재 수익은 둘째치고, 마이너스만 없게 하자는 생각으로 운영 중이에요. 최근에 카페 공간을 넓힌 것도 그런 시도 중 하나입니다.

카페 공간이 넓고 좋아서 코워킹 스페이스처럼 운영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부분도 생각해봤는데, 그럼 '내 자리 임대'에만 집중이 될 것 같았어요. 아티스트 홈즈의 의미나 철학과는 상관없이 내 자리에 앉아서 할 일을 하고, 인터넷 빠르고, 프린트할 수 있고 이런 부분에만 집중되는 건 아닐까 우려가 있었죠.

저희는 오히려 작은 소모임, 워크샵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카페에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시너지를 내고, 아이디어가 나오면 여기 공간에서 현실화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공연이나 전시회는 끊임없이 열리고 있는데보통 예술가들이 먼저 연락을 해 오나요?

네. 베를린에 있는 예술가,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 예술가들도 연락이 많이 옵니다. 같은 독일이라도 다른 도시를 거점으로 하는 분들은 베를린에서 기회를 얻기가 힘들어요. 베를린이 장소가 많은 것 같지만, 네트워크 없이 무대나 장소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음악, 미술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연락이 굉장히 많이 오고 있어요. 그러면 제가 이 공간을 좀 더 설명하고, 지향점이 맞으면 함께 행사를 기획합니다.

 

그런데 한국 관련한 행사는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도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한국분들 연락이 잘 오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먼저 여기 계시는 분들은 목적성이 분명하잖아요. 어학, 학업, 취업, 여행... 이 공간에서 함께 당장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시도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한국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지는 부분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현지인들과는 1대1 소통이 잘 되는 편이에요. 아티스트 홈즈를 발견하면, 바로 저에게 연락을 하고 이야기하고, 지향점이 맞으면 공연을 하고 맞지 않으면 다음 기회에 하자 이렇게 되죠.

그런데 한국분들은 아티스트 홈즈를 발견하고, ‘어 이런 곳이 있네’ 하고는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요. ‘그런 곳이 있대’, ‘어 나도 들어봤어’, ‘이런가 봐 저런가 봐’, 정작 아티스트 홈즈에 있는 우리를 제외하고 대화가 이뤄져요 (웃음). 이런 차이점이 좀 있는 거 같아요.

장소가 중심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것도 한몫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특히 베를린에 오는 분들 중에는 크러이츠베르크, 노이쾰른, 미테 등등 동베를린 지역의 씬을 상상하고 오는 분들이 많아요. ‘홍대 가자, 연남동 가자’하면 꼭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이미 즐겁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이제 도봉동 가자 이런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런데 저는 다른 씬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과 일을 많이 못 해본 게 아쉽기도 하고요. 아이디어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분명 많을 텐데 말이죠. 이곳에 팀이 생긴다면 한국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분야와 전공의 경계를 깨고 싶다는 말을 계속하셨는데, '아티스트' 홈즈라서 아티스트가 아닌 저는 거리가 좀 느껴졌어요.

저에게 아티스트란 '누구나'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예술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간 살면서 정말 직장인보다 더 직장인 같은 예술인도 많이 봤고요, 누가 예술인이고 누가 예술인이 아닌가 규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예술인이 될 수 있어요.

저는 구글도 예술 작품이라 생각해요. 정말 오랜 기간 걸쳐 완성되는 예술 작품. 여기가 아티스트들의 홈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홈즈' 잖아요. 모든 분야의 아티스트가 다 모인 허브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은 지금 어떤 예술활동을 하고 있나요?

그동안 음악가로 살다가 지금은 공간 운영자가 되었는데요, 아티스트 홈즈도 작품으로 생각하고 접근하고 있어요. 크게 봤을 때 제 인생에서 작품을 하나 만든다는 생각으로요.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뷰이의 직업을 규정하려 애썼고, 여기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 하며 어떤 한 단어로 이 장소를 이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실패했다. 김종하 대표는 한 단어로 정의되는 개념, 경계가 오히려 한계를 만든다고 믿는다. 아티스트 홈즈에 그 어떤 선도 그어놓지 않은 이유다.

누구나 올 수 있으며,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공간.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이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곳에 한 번 들어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선을 넘어 보는 것도 좋겠다. ●


본 기사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발행된 기사를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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