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와 세계관, 바우하우스 100주년의 의미

흰색으로 칠해진 깨끗한 건물, 철제 구조물이 드러나 있는 가구, 오늘날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러한 디자인은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독일에서 국립조형학교 바우하우스가 존재한 기간은 겨우 14년. 바우하우스는 하지만 디자인의 혁신을 넘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놓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는 바우하우스가 문을 연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독일 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1년 동안 바우하우스 기념행사가 열린다.

바우하우스 100주년 ⓒ Yujin Lee

바우하우스의 시작

1919년 4월 1일,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를 설립한다. 그는 바우하우스의 교수진으로 훌륭한 예술가들을 불러들였고, 학교 건물은 물론 여러 모델 건축물을 통해서 당대 혁신적인 디자인을 보여줬다. 간소화, 단순함, 여백의 미학이다.

1925년 바우하우스는 데사우의 ‘조형대학’으로 이어진다.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소문자로 쓴 ‘bauhaus’ 디자인이 여기서 시작되었고. 예술과 기술의 조화가 시작된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이후 바우하우스는 제대로 운영을 할 수 없게 된다. 1932년 베를린으로 옮겨갔지만 1년 뒤에 결국 스스로 문을 닫는다. 화려하고 허례허식이 넘쳤던 전통적인 디자인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간소화된 디자인을 보여준 바우하우스는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우하우스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 Yujin Lee
베를린 바우하우스 재건축 조감도 ⓒ Yujin Lee


바우하우스 100주년

독일의 세 도시를 거쳐서 존재한 바우하우스, 독일을 넘어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바우하우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독일의 전 문화예술계가 나섰다. 독일 연방정부 문화미디어청과 베를린, 데사우, 바이마르 등 바우하우스 도시, 연방 문화재단이 함께 ‘세계를 새롭게 생각하다(Die Welt neu denken)’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독일 전역에서 700여 개가 넘는 문화행사가 열린다. 바우하우스 100주년 대표 전시 ‘bauhaus imaginista’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일본, 중국, 러시아, 브라질에서도 함께 진행된다. 독일 연방정부는 바우하우스를 위한 1년간의 행사를 위해서 1,700만 유로를 지원한다. 전시회, 공모전, 강의, 심포지엄, 댄스 페스티벌, 대담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 행사가 시작되었으며, 앞으로도 예정되어 있다. 

바우스하우스 100주년 기념행사들은 특별히 제작된 별도의 플랫폼(www.bauhaus100.de)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미래

100주년 기념행사는 1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방정부는 바이마르, 데사우, 베를린에 새로운 바우하우스 뮤지엄을 짓는데 각 주정부와 함께 공동 재정을 마련했다. 총 5,200만 유로가 투입된다. 현재 베를린의 바우하우스도 공사 중으로 따로 이전한 임시 공간에서 관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베를린의 임시 아카이브에는 바우하우스의 간략한 역사와 발전, 바우하우스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의 초상이 걸려있다.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혹은 바우하우스에 영향을 받은 일상 디자인 용품도 함께 전시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깔끔하고 심플한’, 일상에서 선호했던 디자인,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한 이 디자인은 바우하우스의 산물이었다.


베를린 임시 아카이브를 방문했을 때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식을 화려하고 좀 더 멋있게 하기 위해서는 행사 오프닝 및 주요 전시까지는 재건축을 미루고 건물을 그냥(?) 두었을 수도 있었을 테다. 혹은 100주년 행사에 맞추기 위해서 재정비를 빨리해서 재오픈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사진’이 좋게 나오니까. 하지만 바우하우스는 ‘100주년 기념’으로 수년간에 걸리는 재정비 프로젝트를 이제 막 시작했다.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아 베를린을 찾는 이들은 아쉽게도 임시 아카이브로 가야한다. 이 임시 아카이브의 규모는 놀랍도록 작고 심플하다. 바우하우스다운 임시 아카이브다. 바우하우스 뮤지엄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바우하우스를 보려는 이들에게 큰 문제는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바우하우스 100주년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미 우리의 삶 곳곳에서 바우하우스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이 기사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발행된 기사를 옮긴 것입니다.
http://kofice.or.kr/c30correspondent/c30_correspondent_02_view.asp?seq=16882&page=1&find=&search=&search2=%EB%8F%85%EC%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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